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 킹스맨 발렌타인의 우주 버전?
- 영화
- 2018. 5. 15. 16:32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발렌타인이 떠오른건 우연?
나는 마블의 영화를 매우 즐겨보는 사람이지만 코믹스까지 들춰볼 정도로 해박한 지식을 갖추진 않아서 향후 스토리나 복선 등에 대해서 리뷰할 자신은 없지만 타노스가 가진 대학살의 명분에 초점을 맞춰서 리뷰해보고 싶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타노스에 킹스맨의 발렌타인이 겹쳐 보인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깊이 있는 문제를 제기하는 악당들이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도 많지만, 발렌타인으로 대표할 수 있을 것 같다. 타노스는 납치한 수양딸 가모라와 재회하여 그녀를 데리고 다니는데 그녀와 나누는 대화 속에서 관객은 타노스가 가진 대학살의 명분을 찾을 수 있다.
대학살은 구원이라는 두 분
타노스
타노스가 아무런 이유 없이 이런 논리를 전면에 내세우게 된 것은 아니다. 황폐해진 그의 모행성에서 닥터 스트레인지와 나누는 대화를 보면 그의 행성도 한때는 번영했다. 그러나 점차 늘어나는 인구 대비 한정된 자원으로 인해 장기적으로는 엄청난 희생을 치르게 된다. 그 과정에서 타노스는 인구를 강제로 줄이는 대학살을 제시하게 되는데 거부당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행성은 멸망하고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이 되어버린다. 타노스는 자신의 말을 들었더라면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의 흐름에서 타노스는 '어차피 다 죽을 텐데 대학살이라도 하면 장기적으로 모두가 죽지는 않잖아? 적어도 절반은 살아서 번영할 수 있다고'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리치몬드 발렌타인
성공한 기업가인 발렌타인은 환경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는 대학살을 계획하기 이전부터 지구의 환경 개선을 위해 엄청난 돈과 노력을 쏟아부었지만, 결론적으로 환경이 나아지는 일말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그 이유는 바로 폭발적으로 늘어난 인구 때문이며 개념 없이 환경을 소비하는 인간이 지구의 악성 종양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대로 가다간 지구가 황폐화져 결국 다 죽는 미래가 그의 머릿속에 펼쳐진다. 그래서 그는 다 죽는 것보다는 소수만 남기고 대학살을 하는 것이 인간도 멸종하지 않고 지구도 살리는 길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이게리얼 반박불가
타노스 :: 유한한 자원
자신의 모행성에서 하지 못한 '대학살=구원'이라는 이론을 입증하기 위해 떠난 길에서 가모라의 행성을 만난다. 늘어난 인구를 감당하지 못하는 행성의 자원으로 인해 죽어가는 행성에 자신의 구원(대학살)을 행동에 옮긴다. 현재로 돌아와서 타노스의 옥좌에서 가모라는 타노스에게 "너는 우리 종족을 학살했어"라고 외친다. 타노스는 "그건 구원이었고 너의 행성은 지금 새롭게 번영하고 있다"라며 부인하지 말라는 말투로 대꾸한다. 그러자 가모라는 "그건 너의 대학살 때문"이라며 어이없다는 듯이 말하지만, 결정적으로 타노스의 대학살이 그녀의 종족이 멸망하지 않고 재번영으로 갈 수 있었던 이유임을 스스로 인정하게 된다.
발렌타인 :: 인간에 대한 회의
타노스와 달리 발렌타인은 좀 더 개인적이다. 그의 대학살에는 인간에 대한 혐오가 깔려있다. 대학살에는 실패했지만 어떻게 타노스에 버금가는 신념을 가지게 된 것인지는 그의 대화를 통해 알 수 있다. 억만장자 발렌타인의 대화를 들어보면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정치인들에게 후원하고 환경 단체에 투자하는 과정에서 그저 표와 단체의 이익을 위해 환경이라는 주제를 이용할 뿐인 인간들을 혐오하게 된 것을 알 수 있다. 즉 자신의 노력에 대한 성과가 받쳐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과가 뒷받침 되지 않는 사회 운동 따위로는 획기적으로 환경을 개선할 수 없을 것 같아 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 대학살을 계획하게 된다.
이성과 감정의 충돌
ㅇㄱㄹㅇ ㅂㅂㅂㄱ 문제 제기까지는 괜찮았음에도 발렌타인과 타노스에 쉽게 공감할 수 없는 이유는 도덕과 윤리를 갖춘 인간으로서 대학살이 재번영과 회복된 환경을 불러왔다 할지라도 그것에 감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노스가 가모라에게 보여줬듯 그도 감정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타노스의 내면에서 이성과 감정이 충돌하는 장면은 우리 사회의 많은 이슈가 가진 이성과 감정의 충돌을 축약했다고 볼 수 있다. 정말로 만약에 타노스의 모행성처럼 대학살만이 인간의 멸종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다른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시사하는 바
무슨 히어로/액션 영화가지고 시사에 대입을 하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극단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영화가 늘어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니 우리 사회가 그렇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지구온난화는 사기라는 발언과 파리 기후 협약 탈퇴는 본격적으로 국가 이기주의가 표면화되는 단계인 것 같다. 무차별적인 개발로 생겨난 미세먼지는 지구를 황폐화하고 있다. 러시아와 동유럽, 남중국해의 갈등과 같이 자원을 둘러싼 국가 간의 갈등과 영토 분쟁은 끝이 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우리의 현실이 이렇다 보니 할리우드나 영화계 일부에서는 인간이 지속가능한 종족인가에 대한 회의가 생겨나지 않았나 생각한다. 코믹스에서는 일반적인 악당이 그렇듯이 개인의 목적 영달을 위해 스톤을 모으는 타노스가 영화에서는 우주와 문명의 멸망을 막기 위해 고민하는 캐릭터로 변경된 점이 그 반증 아닐까? 점점 더 우리가 사는 환경은 나빠지고 자원도 고갈되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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