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다는 농담_허지웅

허지웅이 내게 가지는 의미

대학생일 때 겨울방학을 맞아 친구네에 놀러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읽을 책을 구매하러 교보문고에 들렀다. 가볍게 읽히는 책을 구매하려 에세이 코너를 보는데 마침 한 책이 눈에 띄었다. 샛노란 표지에는 어울리지 않는 고단한 제목이었다. '버티는 삶에 관하여', 작가 허지웅. 바로 책을 들고 계산대로 갔다. 나는 이리 맞추고 저리 맞추는 사람보다 자기만의 철학이 있어 그것을 고집하는 까칠한 사람에게 매력을 느낀다. 적어도 평소 매체에서 내가 느낀 허지웅은 그랬다. 결정적으로 그가 보는 것과 소비하는 것 그리고 수집하는 것이 내가 가진 관심사와 동일하여 쉽게 친근함을 느낄 수 있었다.

 

살고 싶다는 농담, 아니 진담

 

버티는 삶에 관하여

이번 에세이 '살고 싶다는 농담'에서도 여러번 언급되는 말이다. 허지웅은 유독 버티어 나간다는 말을 좋아한다. 그것도 같이 버티는 것이 아닌 홀로 버티어 나간다. 그래서 허지웅의 에세이는 몇 년 전부터 서점가를 점령한 어설픈 힐링을 얻으려고 읽는다면 더 우울해지고 쓸쓸해질지도 모르기에 주의해야 한다. '당신은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라는 너무나 오만한 위로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은 앞으로도 우울할 것이고 쓸쓸할 때도 있을 것이며 계속 혼자일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인간은 혼자 이 세상에 왔으며 혼자 죽어야 합니다. 그래도 당신 스스로 살아가기로 결정했다면 버티어 나가세요. 그렇게 말한다.

피해의식

나는 인간관계에서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사람을 굉장히 빠르게 식별하는 능력이 있다.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사람은 특유의 어둠이 있고 의도하든 아니든 남에게 자신과 같은 어둠을 씌우려고 한다. 그렇기에 이들이 극복하지 못한다면 인생에서 반드시 멀리해야 한다. 조금 너무 하지만 온실 속 화초의 배경을 가진 철없고 구김살 없는 도령이나 공주가 차라리 낫다. 이들이 피해의식을 가지게 된 배경은 아마 구구절절할 것이고 충분히 이해할 만한 것이다. 그렇지만 자신의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괴물이 되는 걸 바라지 않는다면 허지웅이 하는 말을 새겨듣자.

'살고 싶다는 농담'을 관통하며 허지웅이 말하고 싶었던 것 중 하나는 피해의식이다. 미국의 37대 대통령 리처드 닉슨으로 시작하는 피해의식이라는 주제는 굉장히 흥미로웠다. 일생의 라이벌 케네디에 비해 가난했으며 배경도 좋지 않았던 탓에 항상 콤플렉스에 시달려 오며 케네디와 자신을 끝없이 비교해가며 종국에는 자신을 망쳤다. 사실 따지고 보면 케네디만큼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배경이 좋은 사람은 지구 상에 정말 소수이다. 닉슨은 충분히 자신을 대견하게 여겼어야 했지만 언론의 케네디 사랑과 닉슨과의 비교는 닉슨으로 하여금 피해의식에 사로잡히게 했다. 허지웅은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피해의식을 닉슨을 통해 다시 들여다본다. '난 자수성가했어, 저놈은 잘 태어났을 뿐이야'라는 생각은 겉으로는 자신감으로 드러날지 모르지만 내면에서는 결국 타고나지 못한 것에 대한 피해의식이라는 어둠의 씨앗이 된다. 허지웅은 자신이 남들보다 빨리 생계전선에 뛰어들며 온갖 궂은일을 하며 버티어 오며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자신의 삶에 나름의 대견함을 가지고 있었을 때가 있었으나 그것이 바탕이 되어 자라는 것이 일종의 피해의식이었다는 점을 이번 에세이를 통해 되돌아본다. 인간인 이상 피해의식을 가지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허지웅은 말한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려 하지 말고 바꿀 수 있는 것 바꿔야 하는 것은 바꿔라. 나는 여기서 수없이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남과 비교하지 말고

어제의 나와 비교하라  

 

허지웅의 추천작 모음

'살고 싶다는 농담'에는 추천 영화가 참 많다. 여기 있는 영화만 보아도 굉장히 의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만큼. 그렇지만 내가 느낀 가장 큰 즐거움은 이번에도 많은 부분 취향이 겹친다는 것이었고 그 사실이 읽는 내내 나를 흐뭇하게 했다. 하지만 전혀 문외한인 새로운 분야도 있었다. 닉슨 대통령이 주인공인 여러 가지 추천 영화들은 무엇보다 그에 대해 단순 사실밖에 몰랐던 편견을 해소해줄 것 같아 시간 날 때 한편 씩 찾아봐야겠다. 이미 알고 있었던 스타워즈에 대한 짙은 애정은 물론이며 나의 인생영화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에이리언 시리즈' 그리고 의외로 냉소적 이미지의 허지웅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 라라랜드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은 정말 인상 깊었다. 허지웅이 배우 존 허트를 추모하며 인용하는 엘리펀트 맨(1980)은 어릴 때 보고 너무 무서워서 다 보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찾아 볼 수 있다면 다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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