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코로나 블루는 공연 블루다
- 끄적
- 2020. 11. 7. 23:20
나는 공연으로 살아가는 인간이다
코로나 이전에 나는 공연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인간이었다. 인간관계에 발이 넓지 않은 편이고 넓은 걸 원하지도 않는 사람으로서 평소에는 굉장히 단적인 생활 패턴을 유지하는 사람은 다른 탈출구가 필요한 법이다. 나에겐 공연이었고 그것은 주로 좋아하는 해외 밴드의 내한 공연과 페스티벌이었다. 코로나가 퍼지기 시작하면서 2020년 올해 가려고 계획했던 내한 공연은 모조리 취소되었다. 그때는 코로나가 이렇게 오래갈지 예상하지 못했기에 지금과 같은 공연 우울증이 찾아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공연 우울증
코로나 이전에 나는 일정기간 사회생활이나 사교생활을 하며 쌓이는 일종의 응어리랄까 이를테면 소소한 분노 그리고 두꺼워지는 가면 따위를 간헐적인 공연을 통해 벗을 수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완전히 자유로웠다. 스탠딩을 하며 고함을 지르며 떼창을 지르고 나오면 알 수 없는 무엇인가 해소되는 느낌이 있었다. 일 년에 가장 많이 지출되는 분야는 당연히 공연이었고 나의 휴가나 저축 패턴은 전부 공연을 향해 있었다. 지금은 공연을 갈 수 없는 상황이 닥쳤고 그다음으로 좋아했던 해외여행조차 갈 수 없는 환경이 되었다. 작년 말 U2 공연 이후 가슴속에 응어리가 차츰차츰 쌓였지만 이것을 풀 수 없어 답답하기 그지없지만 어디에 하소연 하기에 다른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 잘 풀고 있는 듯했다.
재미없는 여름
나는 겨울에 태어났지만 사계절 여름에 살고싶다. 모래에 누워 쪄 죽을 거 같은 해안가의 행복도 좋지만 페스티벌에서 쪄 죽는 행복은 그야말로 파라다이스다. 음악과 맥주 그리고 사람이라니 그곳에서 느껴지는 활기에 천국을 맛보지 못한다면 상당히 정적인 사람이렸다. 하지만 이번 여름에는 페스티벌도 실종되고 말았다. 매 여름 최소 한 번 많게는 세 번까지 가던 페스티벌이 없어지자 여름의 행복은 절반으로 줄었다.
음덕을 살려주세요
그냥 '멜론 TOP 100'이나 듣는 사람들이 부럽다. 그들은 귀에서 스트리밍으로 듣고 나면 만족하지만 음덕은 아니다.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이다. 일상에선 스트리밍으로 듣고 주말에는 음반으로 LP로 듣고 수집하다가 기어코 공연에 가서 직접 몸을 흔들며 들어야 하는 사람들. 아마 나와 같은 공연 블루를 겪고 있지 않을까 싶다. 한 때는 코로나가 어서 빨리 끝나서 피케팅도 하고 이선좌로 고통받으며 밤새며 취케팅을 해서 공연에 가는 날을 꿈 꿨으나 이제는 그 마저도 불투명한 것 같다. 앞으로 무엇을 통해 일상의 응어리를 해소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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