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와 다사다난

 

 

보성

8월 11일(수), 8월 12일(목) 휴가를 내고 광복절까지 5일간의 휴가를 즐겼다. 떠나기 전 설렘을 안고 업무를 마치고 다음날 아침 뽀댕이와 여수를 향해 떠났다. 연애 중이 아니었을 때는 주로 여름의 꽃인 락페스티벌만 돌아다니고 좋은 숙소로 가는 휴가와는 거리가 멀어진 지 100만년이었는데 말이지? 그러고 보니 이번 펜타포트 락페스티벌에도 뽀댕이와 함께했다. 친구들이 아닌 여자친구와 락페스티벌 다녀와서 정말 좋았다. 친구들아 미안. 이번 2박 3일간의 여수행 컨셉은 많은 곳 돌아다니지 않고 리조트에서 요양하기. 우리는 워낙 쏘돌이&쏘순이 커플이기에 정말 많이 쏘다니는 편이라 이렇게 컨셉을 정하지 않으면 요양은 요원한 일이 될 것 같았다.

체크인이 오후 3시여서 시간이 많이 남아 여수 인근 녹차로 유명한 보성에 들렀다. 녹차밭으로 가기 전에 청광도예원에서 점심을 먹었다. 한식을 좋아하는 뽀댕이를 생각하며 찾아본 맛집은 도예원이라는 이름답게 한옥과 도자기가 잘 어우러지는 곳이었다. 녹차를 활용한 다양한 전, 두부, 만두 등 한식 반찬을 맛있게 먹고 대한다원으로 향했다. '산이냐 바다냐' 누가 물을 때면 단 1초 만에 바다라고 답하는 나답게 여름을 맞아 바다를 많이 갔었기에 푸른 녹차밭이 온통 싱그러운 초록의 바다처럼 다가왔다. 때마침 보슬비가 적당히 내렸다. 발걸음을 멈추고 빗방울이 녹차를 스치는 적막 속의 자연 소리를 즐겼더니 제대로 힐링을 한 듯했다. 녹차밭 전망대까지 올라가는 길에 비가 조금씩 많이 내렸다. 다행히 챙겨 온 우양산을 펼치고 녹차밭을 걸었다. 내려오는 길에 곧 다가올 추석이 떠올라 기념품 가게에서 녹차 선물세트를 샀다.

녹차를 눈으로 감상하느라 더위를 조금  먹었더니 녹차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어졌다. 초록 잎이 펼치는 세상이라는 문학 감성 가득한 상호의 카페에 들렀다. 프랜차이즈에 파는 녹차 아이스크림과 달리 녹차 그대로의 쓴맛을 그대로 간직한 아이스크림이었으나 그 쓴맛을 단맛이 잘 잡아줘 단쓴단쓴의 정석을 보여줬다. 마치 아메리카노와 케이크를 동시에 한입 문 듯한 바디감. 비 내리는 녹차밭을 내려다보며 아이스크림을 즐기고 목적지인 여수로 출발했다.

 

여수

약 한 시간이 걸려 여수에 도착했다. 숙소는 수영장이 딸린 리조트로 요즘 유행하는 인피니티 풀을 두 개나 갖춘 리조트였다. 어릴 적부터 수영을 좋아하고 물과 친한 나로서는 물 만난 물고기인 셈. 어서 체크인을 하고 수영을 하자며 뽀댕이를 재촉했다. 짐을 풀고 수영복을 입고 입수! 물에서 목만 빼고 앞을 바라보니 수영장과 바다가 하나처럼 이어졌다. 이런 느낌을 인피니티 풀이라 부르나 보다. 레일 수영장처럼 격렬하게 할 수는 없었지만 뽀댕이와 물놀이를 하고 사진도 찍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꽤 많이 흘렀다. 샤워를 하고 나와 예약해둔 바비큐 동에서 삼겹살과 하이볼 그리고 라면을 즐겼다. 으음! 이것이 요양인가? 수영 이후 맛있는 음식으로 이어지는 요양 코스가 마음에 들었다. 다음에도 해야지!

다음날도 역시 깨자마자 수영을 즐겼다. 일어나서 바로 코앞의 수영장에 걸어가는 호화로운 느낌 제대로! 점심은 밖에서 즐기기로 하고 객실 재정비 요청을 걸어두고 잠깐 여수를 즐기러 나왔다. 숙소 근처 차로 5분 거리의 브런치 카페를 찾았다. 여수에 와서 웬 브런치냐고 할 수 있겠지만 나는 회를 제외한 해산물을 특별히 즐기는 취향은 아니다. 예전에 가족끼리 여수를 찾았을 때 유명한 게장 집을 방문했지만 그다지 특별한 경험으로 남아있지 않았던 걸로 보아 이번에는 패스. 하지만 나름대로 신기한 메뉴를 찾아 잘 먹고 다닌다. 여기엔 여수 돌산의 특산물인 갓김치가 재료인 '갓김치리조또'라는 특이한 메뉴가 있어 도전! 갓김치를 백김치처럼 깔끔하게 자극적인 맛을 뺀 리조또였다. 맵찔이인 나는 빨간색의 매운 리조또를 생각했다가 반전을 맛보았다. 굉장히 맛있었고 같이 나온 갓김치 피클(뿌리 부분으로 만들어진 갓김치 반찬에 이름을 붙여보았다)도 굉장히 잘 어울렸다.

배도 부르니 소화를 도와야지. 숙소가 돌산읍에 위치해있어 바로 남쪽의 향일암에 가보기로 갑자기 결정했다. 우리 둘은 이런 게 잘 맞다. 어디 갈지 정하지 않고 갑자기 정해서 잘 노는 것. 하나하나 어디에 갈지 정해놓다 보면 미션을 깨야 하는 의무감에 여정의 순간을 놓치게 된다. 향일함은 입구로 가는 길부터 굉장히 가팔랐다. 그리고 가는 길은 갓김치 특화거리여서 갓김치 냄새가 더위와 습기를 머금고 진동했다. 아무튼 입구에 도착해서 향일함 돌계단을 오르니 큐티부처 돌상들이 우리를 맞았다. 눈을 가리거나 입을 가린 꼬마 부처들이 차례대로 등장했다. 너무 귀여우니 사진 찰칵. 20분 정도 오르니 땀으로 몸이 흠뻑 젖을 즈음 향일암 사찰이 보였다. 향일암은 신기했다. 돌산을 최대한 활용하다 보니 이런 사찰이 나온 걸까? 건물만 한 거대한 돌 사이 사람 한 명 겨우 들어가는 길을 지나 꼬불꼬불 계단을 돌고 돌아 동굴 같은 곳을 지나니 사찰이 나타났다. 신기하게도 시원했다. 자연이 만든 석빙고처럼. 대웅전과 관음전으로 가는 길은 돌로 이루어진 동굴을 미로처럼 지나야 해 사람들의 인기를 끌었다. 유현준 교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작은 공간도 여러 개의 이벤트가 나타나면 크게 느껴진다 했던가? 그것이 딱 향일암이었다. 코너를 돌 때마다 작지만 디테일 있는 공간들이 나타났다. 바다 근처 가볼 만한 사찰이 해동용궁사가 있다면 돌산의 향일암도 한 번 구경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향일암을 내려와 숙소에 가는 길에 이순신광장 근처에서 육회와 연어를 포장했다. 별빛청하와 같이 숙소에서 우영우 변호사를 감상하며 먹으니 너무 맛있었다. 역시 베스트 초이스였달까? 육회를 잘 즐기지 않는 뽀댕이도 맛있었다며 만족을 외쳤다! 따봉! 그래도 배는 부르지 않아 뽀댕이가 가져온 재료로 감자전을 해 먹기로 했다. 간단한 음식이었지만 요리알못인 우리는 유튜브를 반복 재생하며 열심히 따라 했더니 의외로 괜찮은 결과물이 나왔다! 둘이 처음으로 같이하는 요리여서 더욱 뜻깊었다. 편의점에서 사 온 여수 밤바다 스타우트 맥주를 마시며 욕조에 몸을 담갔다. 이번 요양의 마지막 저녁이었다.

헌트

여수를 떠나는 날 아침. 간단하게 라면을 먹고 체크아웃을 했다. 부산으로 돌아가기 전에 여수의 핫플 대형 카페 모이핀에 들렀다. 과연 유명세를 실망시키지 않는 컨셉과 디자인이었다. 오션뷰가 펼쳐진 통창은 당연히 좋았지만 가장 만족스러웠던 공간은 1층이었다. 지하 같은 컨셉으로 꾸미고 벽에 빔을 쏴서 자연이 건물 안으로 들어온 동굴 속의 청량한 느낌을 주는 공간이었다. 모이핀에서 커피를 즐기고 여수를 떠나 부산으로 향했다. 부산에 도착해 이대로 헤어지긴 아쉬워서 보려고 마음먹고 있던 이정재, 정우성의 헌트를 보기로 했다. 이정재 배우가 첫 감독을 맡은 이 영화는 관람객과 평론가의 호평이 이어지고 있었다. 과연 재밌었다. 특별히 엇나감 없이 두 인물 간 팽팽한 긴장감은 지루함이 없었고 공동의 목적이 생기는 순간 클라이맥스로 치달았다. 꼭 보기를 추천! 아니 배우가 감독도 하고 인생 혼자 사네! 참 부럽다.

 

모범가족

일요일은 여수를 다녀오느라 못했던 운동을 하고는 아무런 일정을 잡지 않고 넷플릭스의 모범가족을 보았다. 재밌었다. 서스펜스와 스릴러가 합쳐져 굉장한 긴장감을 1화부터 마지막 화까지 가져가 이야기를 풀어낸다. 엮이고 엮인 지독한 실타래가 풀리는 듯하면서 다시 꼬인다. 많은 사람들이 오자크를 연상케 한다며 대놓고 베꼈다는 사람도 있지만 한국과 미국이라는 문화적 차이가 주는 차이가 의외로 굉장히 크다. 한 번쯤 집에 콕 박혀 정주행하면 좋을 드라마다.

 

방탈출카페

광복절에 뽀댕이와 해리단길을 방문했다. 해리단길은 항상 주차하기가 힘들다. 그래도 아예 차를 못들고가는 곳보다는 상황이 낫지. 다행히 공영주차장에 자리가 있어 주차를 하고 해리단길에서 오후의 커피를 즐겼다. 최근에는 대형 카페에 자주 가다가 소박한 주택을 개조한 곳에 가니 아늑함이 들었다. 인절미 와플을 먹었는데 많이 달지 않고 슴슴한 게 맛있었다.

 

오랜만에 방탈출카페가 생각나서 해운대에 있는 곳을 예약했다. 테마는 핵실험을 했다고 누명을 쓴 과학자가 되어 탈출하는 것! 난이도는 최하!...였는데 90%까지 하고 마지막에서 실패했다. 마지막 정답은 직원분이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방탈출에는 소질이 없는 게 확실하다. 이런 건 MBTI로 가정하면 S가 잘하는 것 같다. 난 99% 극 N이라 주어진 단서로 합리적으로 추리하는 게 아니라 자꾸 설마! HOXY! 이런 곳에도?라며 망상과 상상하는 쪽으로 추리를 하니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그래도 조금 해보고 생긴 나만의 팁이 있다면 힌트를 초반에 써버리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자꾸 망상하고 있기 보다 처음부터 힌트를 받으면 아 이런 느낌의 컨셉으로 이루어져 있구나~라는 감이 오기 때문에 오히려 중후반 진도가 조금 더 빠르다. 이건 나 같은 성향인 사람에게 해당하는 팁.

 

방탈출카페를 나와서 조금 걷다가 저녁을 먹었다. 구남로의 마녀족발에 오랜만에 들렀다. 예전에는 여기저기 점포를 확장하다가 최근에는 많이 줄었지만 여기는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물가가 많이 오른 탓인지 마녀한상 같은 가성비 좋은 메뉴가 없어졌지만 여전히 맛있었다. 먹고 시원한 여름밤을 즐기러 해변을 걷다가 카카오프렌즈 라이언 팝업스토어(?)겸 카페(?) 같은 곳을 발견했다. 컨셉은 라이언이 부산으로 여행을 왔다는 것! 안에는 다양한 음식과 카페 그리고 라이언과 어피치의 상품들이 있었도 더위를 피해 가기 좋은 장소였다. 조르디가 왜 없냐고! 걔넨 카카오 프렌즈 아니고 니니즈라서 그런가? 한창 유행했던 벌꿀 아이스크림이 팔고 있어서 사보았다. 와 인간적으로 너무 달다. 달아서 지옥이야. 난 역시 너무 달거나 너무 쓰다면 너무 쓴 쪽이 좋다.

 

차량 접촉사고

오전에 푹 자고 운동을 한 뒤 뽀댕이와 놀려고 차를 가지고 나갔다. 골목길을 지나갈 일이 생겨 지나가다가 불법주차된 차 옆을 지나가는데 마침맞은편에 또 한 대가 오고 있어서 3대가 골목길에 낀 상황에서 불법주차된 차의 뒤 범퍼 쪽을 긁고 지나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접촉사고를 낸 것이다. 뭐 움직이는 차끼리 추돌 안 한 게 어디야 뭐...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허지웅이 그랬다. 이미 벌어진 일에 자꾸 "그때 이렇게 했었다면!" 이라고 생각하며 매몰되지 말라고. 피해 차량에 전화번호가 없고 사람도 없어서 어쩌지? 하고 있는데 나보다 더 침착하게 여기저기 알아보고 사진도 찍고 보험사에 연락하라는 뽀댕이의 말을 잘 듣고 보험처리를 했다. 대물 접수를 하고 경찰서에 일단 구두로 전화 연락도 마치고 할 일은 다했다. 며칠 뒤 보험사에서 연락이 왔다. 불법주차였으니 상대방 과실도 10% 정도 있으니 렌트 안 하는 조건으로 합의를 보았다고. 그래서 수리비만 65만 원 나왔다는데 뜨악. 이거 환입 처리해야 하나... 일단 내년 갱신할 때 생각해야지. 앞으로 핫플 골목 같은 곳을 갈 때는 그냥 대중교통이다! 불법주정차 차량 다 폭파시켜줘. 주차장 찾는 사람만 바보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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