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드라마] 바이킹스 가이드
- 텔레비전
- 2016. 11. 22. 23:21
Vikings
바이킹스
본 포스트의 목적에 따라 스포일러는 최소화 되었습니다.
미국의 역사 전문 채널 히스토리에서 제작한 드라마 바이킹스는 유럽풍 중세 드라마를 사랑하시는 분들에게 최고의 드라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왕좌의 게임, 튜더스, 아웃랜더, 롬 등이 있으니 안 보셨다면 꼭 보시기 바랍니다.
한 번의 전투가 일어나기 전까지 온갖 정치와 외교가 펼쳐지는 머리 아픈 고난도 중세 드라마도 엄청난 매력이 있지만, 그냥 다른 이유 없이 약탈하고 때려 부수는 바이킹을 보면서 통쾌함을 느끼려고 보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저 또한 처음은 그렇게 감상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회차가 흐를수록 드라마 제작진이 단순히 때려 부수고 약탈하며 온 유럽을 횡단한 바이킹의 침략 역사만을 다루려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고, 저는 바이킹스에 나오는 다른 점들을 매우 흥미 있게 눈여겨보았습니다.
종교
바이킹들의 행동과 사고방식을 보면 분명한 원인과 결과가 존재하는 사건도 신의 덕분 또는 탓이 됩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바이킹의 침략을 받는 유럽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사피엔스가 계몽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강했는지 보여줍니다. 현대에는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할 수 있는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에 대한 단순한 물음도 인간 역사에 등장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음을 다시 깨달을 수 있습니다.
바이킹의 돌격 장면을 보면 딱 이 말이 떠오를 수 있습니다. '죽고자 하면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이 말의 본질은 단단히 마음먹으면 살 수 있으니 굳게 각오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바이킹의 모습은 살고자 각오하는 것이 아니라, '제발 여기서 죽어야지.' 다짐하며 달려가는 미친 무리의 모습입니다. 이는 상대적으로 문명화된 앵글로색슨 및 대륙의 중부 유럽인들이 전투에서 죽음을 두려워하며 방어를 공고히 하는 모습과는 철저히 대비되는 모습입니다.
저는 그 차이를 믿은 정도에서 찾았습니다. 대 바이킹 약탈 시대 이전만 해도 유럽은 그리스의 다신이 지배하는 세상이었습니다. 그러나 로마의 분열 이후 점차 성장한 기독교와 다툼이 심해지자 통합을 위해 기독교를 국교로 하는 왕국들이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즉 기독교는 위로부터의 종교였습니다. 반면 바이킹의 토속신앙은 그리스의 다신교와 같이 매우 오래되어 모든 계급에 배어있었으며 동네 거지도 믿고 행하는 종교였습니다. 이는 소위 모든 종교에서 말하는 죽어서 좋은 사후세계로 갈 수 있음을 믿는 정도에 많은 차이가 났다고 보입니다. 바이킹에게는 발할라가 있었고, 기독교 병사들에게는 천국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이킹은 전장에서 죽어야만 발할라로 갈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으로 무장했기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이는 전투의 승패를 가르는 군대의 사기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습니다.
전투를 벗어난 일상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믿음은 플로키와 애설스탠에게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플로키는 라그나 로스브로크의 무리에서 배를 만드는 장인이며 신앙에 대한 믿음이 구성원 중에서 가장 강합니다. 애설스탠은 잉글랜드의 앵글로색슨족이며 수련 중인 사제 계급입니다.
플로키와 애설스탠이 보여주는 믿음의 방식은 같지 않습니다. 플로키는 어려울수록 토르에 대한 의심 없는 믿음을 더욱더 강화하고 기독교를 적대시하여 극복하는 반면, 애설스탠은 난생 처음 보는 노스맨(바이킹)들의 신앙을 접한 뒤 많은 내적갈등 겪는 인물입니다. 이는 기독교가 대륙에서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과도기 기독교인들이 실제로 겪었을 법한 갈등을 한 인물에게 투영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보이지 않는 존재가 있을까 없을까의 현대적 문제가 아니라 '이교도들이 강하게 믿는 그들의 신이 사실일까? 그렇다면 예수는?' 이 정도에 따르는 고뇌입니다. 예수도 제우스 같은 역사 속의 많은 신 중 한 명일 뿐이라거나 또는 현자에 가까운 인간이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현시대의 관점에서 보면 유치한 고민일 수도 있겠으나 그들에게는 매우 심각한 고민이었을 것입니다.
정치
저를 포함하여 바이킹에 관해 자세한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들은 비록 최근에 많은 미디어에서 재조명되었지만 그들이 부족 단위에 머물렀고 약탈을 일삼는 야만족이라고 생각하고 있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들에게도 바이킹식 정치가 있었음을 흥미진진하게 풀어갑니다.
바이킹의 정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중세 유럽의 정치와 다릅니다. 기독교 유럽 왕국의 왕권은 신이 내린 것이기에 왕이 힘이 없고 무능해도 혹은 전투에 앞장서서 싸우지 않아도 그 위치는 전제적입니다. 하지만 바이킹의 정치는 전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만큼 참 흥미롭습니다. 오로지 힘과 명예를 강조합니다. 왕은 최전선에서 싸워야하며 육체적 정치적 힘이 사라지면 곧바로 쿠데타의 원인이 됩니다. 귀족이 힘이 더 쎄고 지지세력이 더 많다면 왕의 앞에서 거들먹거리는 것도 가능합니다. 실세 있는 공작이 모두가 지켜보는 곳에서는 적어도 왕실에 무릎을 꿇는 시늉을 하는 것과는 대비되는 부분입니다. 심지어 왕, 귀족, 영주의 위치도 거부될 수 없는 신성함으로부터 부여된 전제 권한이 아니므로 야밤을 틈타 전복에 성공하기만 한다면 빼앗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피지배계층 구성원의 신의를 얻지 못한다면 또 다른 반발을 불러올 수 있음은 당연합니다. 이런 점이 막장이 될 수도 있으나 예측을 불허한다는 점에서 최고의 관람 포인트입니다.
사회
드라마를 통해서 얕게나마 바이킹의 사회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역설적이게도 문명화된 대륙의 유럽보다 스칸디나비아의 바이킹이 훨씬 성 평등 사회였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 프란치스코 교황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행사에 참여하고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예수가 남자를 사도로 삼았던 전통을 존중해 여성의 사제직 진출은 영원히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 발언은 현재도 많은 논쟁을 낳고 있습니다. 이처럼 기독교는 여성의 사제직 진출을 금하고 있으며 종교적 의식을 주관하여 진행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 할 일로 치부됐습니다. 하지만 바이킹은 여전사의 정복 전쟁 참여, 왕이나 영주가 출타 중일 경우 왕비나 백작 부인이 국사를 돌보고 재판을 합니다. 심지어 농경 사회에서 풍작을 기원하는 제사도 여성이 진행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런 점은 한국사를 공부하던 학생이 고려 시대에는 출생 순서대로 호적을 기록하였고 여자도 조상 제사를 지낼 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겪는 충격과 비슷합니다. 우리는 흔히 문명이 발전할수록 성 평등이 더 개선된다는 생각을 하지만 성 평등과 문명 수준이 생각보다 관련이 없음을 다시 깨닫게 해주는 관람 포인트입니다.
마치며
역사 전문 채널인 만큼 바이킹스는 상당 부분 고증이 많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저는 역사 드라마를 시청하면 등장하는 나라와 인물들을 하나씩 검색해보는 편입니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고 많은 부분 각색이 있지만, 세계사를 더 알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바이킹스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즐기고 볼거리가 상당히 많은 드라마입니다. 박력 넘치는 바이킹들의 유럽 일주가 정치적 종교적 문화적으로 어떻게 섞이며 영향을 미치는가에 초점을 둔다면 보다 더 흥미로운 시청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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