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드라마] 트루 디텍티브 가이드

* HBO :: 트루 디텍티브


본 포스트의 목적에 따라 스포일러는 최소화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2014년 상반기 최고의 명작으로 평가했던 드라마가 ‘트루 디텍티브’입니다. HBO는 그동안 수사 드라마를 그리 많이 다루지 않았습니다. 수사물이라고 하니 ‘과연 어떠한 작품을 내놓을 것인가?’ 라는 궁금증이 계속해서 치솟았었죠. 수사물이라는 것은 드라마 시장을 장르별로 나눈다면 매우 큰 시장이지만 그만큼 레드오션이고 흔하고 흔한 장르입니다. 과학수사, 심리수사, 프로파일러, 천재를 동원한 수사, 범죄자로 범죄자를 잡는 수사 등등 다 나열하지도 못할 만큼의 많은 수사물이 있습니다. 그래서 HBO라면 어떤 수사를 할 것인가? 에 대한 관심은 매우 컸습니다. 그런데 웬걸 뚜껑이 열리고 시즌1이 끝나고 나서 저는 감히 말하건대 2014년 상반기 새로운 드라마 중에서 명작이 나왔다고 단언합니다.



* 다수의 수사 드라마와는 궤를 달리한다.


트루 디텍티브는 기존 대부분의 수사물 패러다임을 완전히 거부했습니다. 미국 드라마의 주류 수사물이 그렇듯이 훈훈한 남녀콤비, 최첨단 과학수사, 비정상적인 관찰력과 예측력 등 어쩌면 이런 것만 넣어도 평균 이상의 시청률을 올릴 수 있는 인기요소를 모조리 배제하였습니다.



* 男男 콤비 :: 좌측부터 마티 하트(우디 해럴슨), 러스트 콜(매튜 맥커너히)


이제 드라마 내부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트루 디텍티브는 중년의 중후함이 매력적인 두 배우 매튜 맥커너히와 우디 해럴슨의 남남코비로 진행됩니다. 우디 해럴슨은 나우유씨미, 헝거 게임 시리즈를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배우입니다. 매튜 맥커너히는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명품 배우로서 영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으로 영화계 최고 권위상인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으며 현재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배우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미드에서 보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2014년 당시에 저는 트루 디텍티브로 TV 방송 분야 시상식인 에미상을 받으리라 예측했는데, 바로 아카데미상으로 가는 쾌거를 이뤘습니다.



* 하나의 사건을 진득하게 따라가는 러스트 콜


트루 디텍티브는 한 에피소드에 하나의 수사를 빠르게 종결하는 옴니버스 방식이 아닙니다. 오직 단 하나의 사건만을 시즌이 끝날 때까지 쫓는 '과정'을 그립니다. 17년 전 러스트 콜(매튜 맥커너히)이 루이지애나 주로 발령이 나고, 마티 하트(우디 해럴슨)와 함께 수사하는 과정에서 사슴뿔이 달린 채 무릎을 꿇고 죽어있는 여자의 시체를 발견하면서 이야기는 잔잔한 물처럼 흐르기 시작합니다.



* 사건이 벌어지고 17년 후의 러스트 콜. 분명 동일 인물이다


전개 방식은 상당히 특이합니다. 극의 주요 무대는 분명히 과거고 시점도 과거입니다. 사건이 벌어진 처음에는 연쇄적인 사건인지 모른 채로 한 단계씩 밟아가는 과거 시절의 풋풋한 두 형사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17년 후 현직에서 은퇴한 뒤 이 사건과 연계된 것으로 보이는 사건이 발생하여 참조인으로 취중 진담을 풀어놓는 현재의 시점을 교차합니다. 이런 전개 방식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퍼즐 맞추기를 요구합니다.


*  사건이 벌어지고 17년 후의 마티 하트. 천천히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분명 기존의 대표적인 수사 드라마인 CSI, NCIS, 멘탈리스트 등 인기 수사물에 심취해있던 분들이 본다면 '뭐야 이거?'라는 말이 나오게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대게 그렇듯이 인기 수사물은 전개가 빠르고 명확하며 시청자들에게 사회 정의를 바로 세우는 통쾌함을 선사해줍니다. 트루 디텍티브는 속도로만 보자면 답답할 정도로 전개가 느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풀어 놓는 퍼즐 조각은 무엇과 연관되어있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고, 사건은 진행되는지 안 되는지 등장인물들은 헛소리를 자주 하고, 최첨단 과학으로 명쾌한 증거를 찾아내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 잔잔한 흐름 속에서 느낄 수 있는 미학에 빠지게 되면 장담하건대 빠져들게 됩니다.



* 고대의 사악함이 느껴지는 벽화


인간이 느끼는 가장 무서운 공포는 '상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상상이 상상을 키우고 망상에 이르게 된다는 말처럼 살인 사건을 천천히 음미하고 느끼다 보면 시청자의 상상 속에서 더욱더 두려운 존재가 됩니다. 대표적으로 살인마가 남기고 간 벽화는 드라마 안에서 엄청난 공포감을 심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 살인마를 쫓다 보면 이와 같은 정신상태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사람이 아닌 지옥의 아수라에 가깝다는 상상까지 하게 됩니다.


그래서 시청자가 트루 디텍티브를 감상하면서 취해야 할 태도는 과정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결국, 제일 중요한 것은 살인마의 생김새도 아니고 잡느냐 잡지 못하느냐도 아닙니다. 연쇄 살인마를 쫓아가면서 천천히 보게 되는 과정에 집중해야 합니다. '과정의 미학'이야 말로 트루 디텍티브가 새롭게 제시하는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 이런 그림을 그리지는 않을 것이다.


트루 디텍티브는 흔히 악마의 상징인 뿔을 통해 살인마를 투영시킵니다. 뿔은 연쇄 살인마의 정신상태뿐 아니라 사타니즘, 오컬트적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데 일조합니다. 음산한 분위기가 더욱 가미되는 이유는 미국 남부 시골 특유의 습한 온도와 한 발자국 나가기 힘든 미로 같은 울창한 숲 그리고 사람 한 명 지나가지 않는 폐허가 추적의 배경이 되기 때문입니다.



* 러스트 콜의 머릿속은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다.


주인공이 정상적인 범주의 캐릭터가 아니라는 것도 이 드라마를 감상하는 데 중요한 요소입니다. 드라마를 감상하면서 느낀 것은 ‘수사 드라마의 캐릭터 아이덴티티가 이렇게 강할 수 있다니, 이 캐릭터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들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가 이런 생각이든 캐릭터가 다들 하나쯤은 존재할 것입니다


트루 디텍티브에서 그 캐릭터는 다름 아닌 ‘러스트 콜 ’입니다. 그에게 웃음과 즐거움이란 없습니다. 자폐증세 조금, 사이코패스 증세도 조금, 염세주의적이면서 형이상학적 철학관을 복합적으로 가진 캐릭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 이런 인간 만나면 정말…. 이라고 생각되지만 ‘매튜 맥커너히’이기에 멋있어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러스트 콜에게 삶이란 무상한 것이며, 별로 가치가 없고 그냥 못 죽어서 사는 것입니다. 또한, 형이상학적 철학에 매우 심취해있고 추구하는 지식은 고대 종교관, 사타니즘, 오컬트 등입니다. 그래서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뇌 속에 가지고 있습니다. 러스트 콜이 수사를 하는 도중 중간중간 하는 말들을 들어보면 정말 그럴싸하긴 한데도 다시 생각해보면 정상적인 인간의 사고방식과는 동떨어져 있음을 인지할 수 있습니다. 그가 남긴 어록을 하나 인용해봤습니다. 이 정도면 러스트 콜의 똘끼 충만한 뇌 구조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으실 거로 생각합니다. 트루 디텍티브는 러스트 콜이며 러스트 콜은 트루 디텍티브라고 할 만큼 이 드라마는 이 캐릭터에게 많은 빚을 졌습니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무(無)에서 영혼을 끌어내어 고깃덩어리 몸뚱이에 가두는 거야. 그리고는 이 치열한 세상에 내던지는 거지"


-트루 디텍티브 :: 러스트 콜-



마침내 피날레를 장식하고 나면 하나의 예술 작품을 감상한 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하지만 숨막히는 상상 속의 공포도 끝났다는 안도감도 느껴집니다. 러스트 콜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나의 무한한 상상과 마주하는 드라마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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